화석 연료가 인류의 주 에너지원이 되기 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은 나무였다. 나무는 열을 공급하는 땔감으로 뿐만 아니라, 선박, 농기구, 마차 등 각종 산업제품의 주 원료로서 가장 중요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질 좋은 나무가 많이 나는 삼림은 오늘날의 유전과도 같았다. 삼림이 울창했던 독일 동부나 북유럽은, 말하자면, 16세기의 중동과도 같았다.
목재가 중요하다보니, 삼림 관리야 말로 국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좋은 목재는 국부에 결정적일 뿐 아니라, 세입의 주된 원천이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삼림의 과학적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삼림을 하나의 거대한 광산으로 보는 것, 목재를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근대 삼림학의 근간을 이루는 시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재 산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삼림관리, 즉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삼림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제임스 스콧의 저서 '국가처럼 보기'에는 이런 근대 삼림학의 바탕에 깔린 공리주의적 시각에 대한 좋은 설명이 나온다.
"공리주의 국가가 (상업적) 나무만 보느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숲을 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삼림에 대한 공리주의의 관점이 추상적이고 부분적이라면,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독특한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추상화는 잠재적으로 모든 분석 형태에 필수적이며, 국가 관료에 의한 추상화가 그들 고용주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재정적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디드로의 <백과사전>에서 '삼림'이라는 항목은 거의 전적으로 삼림의 생산물과 세금, 총수입, 이윤 등 국가 관료가 산출할 수 있는 '공적 유용성'과 관련되어 있다. 동식물 서식지로서의 삼림은 사라지고 이윤이 남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으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서 재정적-상업적 논리는 일치한다. 두 논리가 확고하게 손익계산에 고정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자연을 체계화하는 데 사용하는 어휘는 전형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드러낸다. 사실, 공리주의 담론은 '자연'이라는 용어를 '자연자원'으로 대체하는데, 이는 인간의 사용목적에 부응할 수 있는 자연의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따라서 가치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찍힌다.
...독일 삼림과학이 성문화되고 교육가능한 엄밀한 기술적-상업적 학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말해서 삼림을 하나의 '상품 기계'로 크게 단순화시킨 노력 덕분이었다. 그 엄밀성을 위한 조건은 선택한 종의 산출량과 재배 및 벌채 비용에 직접 관련된 변수를 제외한 다른 모든 변수가 엄격하게 통제되거나 불변이라는 가정이다. 우리가 앞으로 도시계획, 혁명 이론, 집단화, 농촌 재정착 등에서 살펴보겠지만 '통제 바깥'에 놓여있는 전체 세계는 이러한 기술적 비전을 성가시게 만들며 되돌아온다."
-제임스 스콧 '국가처럼 보기'
문제는 이런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삼림, 즉 하나의 '상품기계'로서의 삼림이라는 것이 사실은 목재 생산의 극대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었다. 이런 공리주의적 관점을 가장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것이 프로이센이었다. 일찍부터 삼림관리에 대한 학문이 발달한 프로이센에서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목재 산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삼림 조성이 본격화된다. 곧고 질 좋은 목재로 유명한 노르웨이가문비 나무같은 한 종으로 삼림을 채워버리는 것이었다. 동일한 종, 동일한 수령으로 채워진 삼림은 마치 논이나 밭과 같이 관리해서 일정 주기로 목재를 얻는다는 것이 이런 발상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는 본래의 의도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독일 사례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한 삼림으로부터 생물학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업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는 침엽수림의 두 번째 순환이 있고 나서 뼈아프게 명백해졌다...최악의 경우를 묘사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인 '숲의 죽음'이 독일어 어휘에 추가되었다. 당시는 물론 현재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균류와 곤충, 포유류와 식물상 간의 공생 관계, 토양 형성과 양분 흡수를 포함하는 유난히 복잡한 과정이 명백하게 붕괴함으로써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결과 대부분은 과학적 삼림의 극단적 단순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동일 수령, 동일종의 삼림은 서식개체의 다양성이 낮을 뿐 아니라 큰 폭풍우 앞에 한층 취약하다. 곧, 종과 수령의 균일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일례로 노르웨이가문비 나무 역시 그 종에 특화된 모든 '해충'에게 훌륭한 서식지를 마련해주었다. 이들 유해생물 집단은 전염병 수준까지 증가했고 산출량의 손실을 초래했으며 비료, 살충제, 살균제, 쥐약 등에 높은 비용을 치르게 했다. 최초 순환에서 대부분의 노르웨이가문비나무 삼림이 예외적으로 잘 성장한 것은 다양하게 구성된 원시림을 대체하기 이전에 오랜 기간동안 축적된 토양을 먹고 살았기 (혹은 고갈시키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일단 그 자원이 고갈되자 성장률이 가파르게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제임스 스콧, 위의 책
삼림이라는 복잡한 생태계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에 맞춰 폭력적인 방식으로 삼림을 개조한 것이 결국 파국을 낳았다. 제임스 스콧은 이런 삼림의 극단적 단순화가, 근대 국가가 행했던 많은 야심찬 사회개조 사업들-소련의 집단 농장화같은-이 어떻게 결국 파국을 낳고 말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고 전한다. 국가는 사회를 단순화시키려 한다. 사회는 국가가 파악하는 것보다 더 복한한 현실이다. 국가는 그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켜서 사회를 통제하려 한다. 근대 역사의 한 축은 바로 이러한 국가와 사회 간의 작용-반작용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