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참고글:한국 주택시장의 문제
"우리나라의 아파트 분양 시장은 자유경쟁 시장이 아니다. 일반적인 상품시장과는 매우 다른 시장이다. 우선 토지의 공급권한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통제한다. 권력자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바뀐다. 토지를 사서 설계도만 가지고 분양을 하는 건설회사가 판매가격을 결정한다. 분양가격을 결정할 때 원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얼마에 내놓으면 이익을 많이 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토지를 평당 600만원에 사서 건축비 400만원을 들여 원가가 평당 1000만원인 집을 평당 3000만원에 분양한다. 소비자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정부가 땅을 공급하고 건설회사가 분양가를 내놓으면 미래의 가격 상승 여부를 예상해 살지 말지를 판단할 뿐이다.
... 그렇다면 한국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의 태반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빈곤층 증가, 가계부채와 이에 따른 금융불안 문제, 저축은행 부실화 문제, 저출산과 젊은이들의 불만, 교통난 등은 부동산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의 핵심적인 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건설업자, 토지소유자, 관료 등 소수의) 이권집단들에게 농락당해온 시장이며, 그들은 공급을 적게하는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올려서 이권을 챙겨왔고 대다수의 국민들을 고통에 빠드렸다는 것이다. 즉, 공급부족이 핵심문제라고 생각한다.
...2010년말 현재 서울은 979만 가구에 350만 가구로 되어있다. 주택은 253만호로 조사되었다. 97만호나 차이가 난다. 주택수 통계를 낼 때 다가구주택을 한채로 잡는다. 그 중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20여만호를 제외해도 80만 가구, 즉 인구의 20%가 열악한 주거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80만 가구 200만명 정도는 다가구주택의 일부, 옥탑방, 반지하방, 여인숙, 고시원 심지어 비닐하우스에서도 산다.
...전국적으로 보면 2010년말 현재 총 주택수는 1468만채이며 거주단위의 가구수는 1734만이다. 무려 266만 가구가 부족하다. 23만호의 오피스텔은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므로 주택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2010년 정부의 공식 주택보급률 101.9%는 실제거주단위 기준 주택수 1767만채를 가구수 1734만으로 나눈 수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는 통계의 허구성을 간파해야 한다. "
박창기, <혁신하라, 한국경제> 중에서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참고글: 막스 베버의 의회주의에 관한 단상
막스 베버에게 있어 현대의 정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관료제 지배를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느냐에 관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베버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정치가는, 한 마디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가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관료제의 지배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그런 책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료제 지배 하에서 특정 정책이나 정치적 결정의 책임 소재는 흔히 모호해지며, 그 업무의 전문성이나 비밀성에 비춰볼 때 일반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기 어려운 성질을 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가의 중요한 임무는 그런 행정의 불투명성과 책임소재의 모호함으로 빚어지는 결과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 것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베버가 간단히 제시하는 것은 의회의 조사권이다. 오늘날의 국정조사를 생각하면 된다. 베버는 의회의 조사권을 확대함으로써 행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그 조사 과정에서 국회의원들, 즉 정치인들이 적절한 전문성을 쌓을 기회도 증대된다고 보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정조사가 그와 같은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는 따로 고찰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더 폭 넓게, 약간은 모호하게 말하자면, 베버는 행정에 대한 의회의 우위를 주장한다. 그 우위는 행정 각 부의 장관과 같은 핵심적인 정무직을 엽관 인사로 채우는 것이다. 이 것은 오늘날 우리의 직관과 배치되는 주장으로 보인다. 행정의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 관료들이 장관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정치 실세들이 장관을 하면 행정부 전체가 정치논리의 지배에 휘둘리지 않는가.
베버는 그 같은 행정의 정치화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베버 자신이 세상을 상쟁하는 가치들 간의 투쟁의 장이라 생각했던 탓도 있겠다. 하지만 더 핵심적인 것은 의회는 선거를 통해 인민들에게 주기적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 즉 그들의 정치적 행동의 결과에 대해 비교적 투명하게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투명한 책임성 자체가 정지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책들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고, 장관 자리에 신중한 인사를 하게 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그 같은 베버의 통찰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 얼마나 유의미한가.
무엇보다 우려되는 일은 정치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부정적인 것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정치적/당파적/분열적이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된다. 국회와 국회의원은 무능과 비생산적 세싸움, 막말의 대명사처럼 비춰진다. 50%도 안되는 투표율로 당선된 299명의 의원들이 사회 전체의 정치적/사회경제적 균열, 즉 입장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국회의 정치적 대립이 사회 내에 존재하는 실제적 정치적 대립을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와 괴리된 상황에서 국회 자체의 무능은 더욱 도드라진다.
국회가 무능해진 이때 실제로 국가기구를 지배하는 이는, 대개 관료라 베버는 보았다. 한국에서는 관료와 재벌 및 기득권 세력, 보수 언론간의 삼각연합 체제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지배한다. 이 삼각연합이 독점하는 국가의 폭력수단은 거리에서는 곤봉과 방패로, 철거현장에서는 용역깡패로, 법원에서는 입법을 해대는 법관으로 현현한다. 방상훈의 개들은 그 뒤에서 법치를 노래하며 펜대를 굴린다. 덕분에 시민들은, 인민들은 거리에서는 곤봉에 얻어맞고 철거현장에서는 불에 타 죽으며 법원에서는 무전유죄를 선고받는다.
이러니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가족, 믿을 건 가족 뿐이다. 가장이 무너지면 다 같이 동반자살, 디 엔드. 자살률 1위의 혁혁한 공범자들이 자살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가장 격하게 꾸짖는 개 같은 현실. 벤야민의 말처럼 "승리하는 적 앞에서는 죽은 자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정치적인 것이 귀환한다는 말은 이와 같이 현재 한국의 국가기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들의 연합에 균열을 낸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에게 있어 정치는 너무 많은 것이 아니라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파적이고 주관적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베버는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 의회주의의 확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의회는 책임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양성하는 (그나마 가장 나은) 현실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국회에서 그 같은 것이 가능할까. 한국의 정치는 자꾸 거리로 나가고 있거나 인터넷 상으로 들어가고 있지 국회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최재천 같은 이들이 재선에 실패하고 전여옥 같은 이들이 당당히 재선뺏지를 다는 현실이라면 국회를 닫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고글: 의회 리더십과 관료제의 관계/막스 베버
"현대 의회는 우선 관료제라는 수단에 지배받는 피지배자들의 대표단체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어떤 계층의 최소한의 내적 동의는 모든 지배가, 심지어 가장 잘 조직화된 지배까지도 지속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공적 권력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와 사전 협의를 거친 법 제정이 의무적이며, 무엇보다 예산안이 필수적이다. 신분차등법이 생겨난 후 지금까지 국가의 자금조달 방식, 즉 예산권에 대한 처분은 의회의 결정적인 권력수단이었다.
물론 의회가 정부 지출과 법령의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또는 별 의미가 없는 발의를 함으로써 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강력하게 피력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정치적 지배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아니다. (이 경우) 의회는 '소극적 정치'만을 할 수 있으며, 적대적 권력과도 같은 행정 지도자들과 대립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회는 행정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얻을 뿐이며, 단지 제동장치로서, 즉 무능한 불평꾼들과 잘난체 하는 자들의 모임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한편 관료제는 의회와 유권자에게는 엽관 운동가와 심복의 카스트로 나타나는데, 이들 엽관 운동가와 심복은 인민을 부담스럽고 불필요한 활동의 대상으로 취급할 뿐이다.
의회가 다음과 같은 것을 관철시키면 상황은 달라진다. 행정 지도자는 의회에서 곧장 충원되든지(본래의 의미에서의 '의회제도'), 명백하게 표현된 다수의 신뢰를 얻거나 최소한의 불신을 피해야만 행정 지도자가 관직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의회를 통한 지도자 선출), 행정 지도자는 이러한 근거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고 의회와 그 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지도자의 의회에 대한 책임성), 행정은 의회에서 선택된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행정에 대한 의회의 통제) 등이 관철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의회의 지배 정당 지도자는 필연적으로 국가 행정의 적극적인 공동 참여자이다. 이 때 의회는 적극적 정치의 한 요소가 된다."
- 막스 베버, 관료 지배와 정치적 리더십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중국과 한국 관계 문제;<용과 춤을 추자> 간단 정리
조영남의 '용과 춤을 추자'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의 관점에서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중국의 급부상이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국제정세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석하고, 이런 급부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알아본 뒤 한국은 향후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제언한다.
저자는 한국에서 널리 퍼진 중국대세론과 중국위협론을 모두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향후 20~30년내 미국을 대체할 수퍼파워가 된다는 것은 성급한 분석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급부상이 우리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일본 등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무리한 요구다. 중국의 현재 위치와 향후 발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정세를 제대로 읽고, 그에 맞는 한중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의 급부상은 전적으로 덩샤오핑 시대 이후 경제성장 덕이다. 30년간 평균 10%를 넘나드는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의 적절한 리더십,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시장의 개방과 통합 등 여러 요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식 경제발전은 공산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넘어가는 사례 중에서도 독특한 모델이 됐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공산당 계획 아래 단계별로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 사회 분야의 민주화는 억제한 것은 중국이 유일무이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성공적인 경제성장 자체가 현재 공산당의 정당성을 확보해준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19년 간이나 버틸 수 있었던 이유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또한 문혁 시기의 사회적 혼란을 장기간 체험한 중국 지도층과 지식인, 시민들 모두가 공산당의 안정적 리더십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공화정 말기의 계속된 내전에 지친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혈통이 황제 지위를 독점하는 것을 허용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공산당이 몇몇 개인에게 장기간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방지하고 일정기간을 간격으로 성공적인 리더십 교체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중국 공산당은 주석과 총리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소수지만 우수한 엘리트들이 아래에서부터 최고위층까지 두루 경험을 쌓게 해서 유능한 지도부가 권력의 바통을 계속 이어받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일정부분 민주적인 제도를 도입해 민주화 요구에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며, 지금의 중국이 단기간에 급변하는 사태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필요한 것도 이런 중국의 상황을 토대로 그에 맞는 대중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 어느나라보다 더 긴밀하게 맺어진 상태다. 지정학적 거리의 문제(중국과 대립하기에는 너무 가깝다) 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한국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을 택해선 안된다.
저자는 미국의 중국 견제, 포위 정책과 그에 동조하는 일본과 한국의 전략이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미동맹에 대한 무조건적 맹신과 강화는 답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대중무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고, 경제의 사활을 좌우하는 주요한 부분이 됐다. 또한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과 멀어질수록 북한 문제까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대북 강경책 일변도로 가는 것도 대중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정 부분 북한과 관계유지가 필요한 중국의 대외전력 상 대북 강경책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옹호하고 우리를 경원하게 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저자의 조언은 현 정부가 충분히 음미할만하다.
"한ㆍ미 동맹의 범위는 한반도가 중심이라는 점, 즉 대북 억제가 목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ㆍ미 동맹은 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평시와 전시 모두에서 한반도와 관련된 군사 행위에서만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를 기초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불평등 사회와 지대추구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박창기의 <혁신하라 한국경제>의 공통점은 1대99의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다. 여기서 1대99란 소수의 수퍼리치들이 사회 전체 부의 상당부분을 독식하고, 대다수 근로자들이 상대적 또는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 구조를 가리킨다. 스티글리츠와 박창기가 인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통계 자료들에 따르면, 최근 수십년간 미국과 한국 둘 다 사회 최상층의 소득증가율은 두드러진 반면, 근로자 대다수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도 두 저자는 비슷한 진단을 한다. 경제학 용어로 렌트, 즉 지대를 사회 최상층이 독식하는 구조가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렌트는 정상이윤을 넘어선 잉여이익을 가리킨다. 경제학적으로는 불완전한 경쟁상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완전경쟁일 때 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재화를 구입하면서, 생산자가 챙기는 초과이익을 말한다. 주로 천연자원이나 전기처럼 소수의 공급자만 존재하는 독과점 시장, 또는 법률이나 의료 등 진입장벽이 높은 서비스 시장에서 발생하는 높은 수익을 렌트라고 볼 수 있다.
스티글리츠가 주로 지적하는 분야는 금융이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 렌트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겼다. 방만한 경영으로 은행 경영이 부실해져도, 국가가 세금을 쏟아부어 회생시키는 동안, 경영자들은 보너스 파티를 벌이는 현실이 적나라한 지대추구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박창기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지대추구 현상을 본다. 규제에서 벗어난 소수의 재벌이 바로 그 예다. 출자총액제한이 풀리자, 총수 일가 지분 100%인 계열사를 만들어 일감을 몰아주고 주가를 올려 배당을 챙기거나, 빵집같은 서민업종에 진출해 수익을 올리는 행태들이 지대 추구의 예가 될 수 있다. 진입장벽이 높고 보수가 좋은 교사나 공무원도 지대추구의 한 예로 볼 수 있다고 박창기는 지적한다.
지대추구는 제 3세력의 개입없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풀어나가기 어렵다. 특히 국가가 지대추구 세력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거나, 공정한 규제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할 때 지대추구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로마의 정치와 군사
로마는 헬레니즘 문명의 연장선에 있는 문명이었다. 당시 문명의 중심은 헬라스 세계였고, 로마는 변방이었다. 문명사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는 그리스 문명의 아류에 가까웠다고 혹평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로마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지중해 세계를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의 진정한 재능은 정치와 군사에 있었다.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정치적 천재를 혼합정체에서 찾았다. 왕정과 과두정과 민주정이 적절하게 섞인 체제라는 지적이다. 로마가 이런 혼합정체의 특징을 갖춘 것은 맞다. 로마는 3개의 상이한 민회가 있었고, 거기서 뽑힌 소수의 정무관들이 국가의 행정을 맡았다. 정무관들의 임기는 1년으로 한정돼있었기 때문에, 정체의 변동이 심할 수 있었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고 정체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조직이 원로원이었다. 초기에는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았던 원로원은 포에니 전쟁 이후에는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쥔 조직이 된다.
로마 정체의 역사는 신분 다툼의 역사이기도 하다.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로마는 귀족과 평민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운영됐다. 초기에 평민들은 집정관 등 국가의 주요 관직에 진출 할 수 없었다. 귀족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평민회에서 뽑히는 호민관이었다. 호민관은 원로원과 민회, 집정관이 제안하는 각종 법률에 대한 거부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야당같은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평민의 권리 주장은 계속 이어져, 결국 실제 법적인 참정권이라는 측면에서 귀족과 평민은 완전히 같은 위치에 서게 됐다.
이런 평민의 권리 신장이 가능했던 것은 로마 군대의 근간이 시민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로마 군대의 주축은 시민군이었다. 재산을 가진 시민들이 자원해 이뤄진 군대는, 로마가 인근 도시들을 굴복시키고 라틴 동맹의 주축으로 떠오르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숫자 상 시민군의 주축이었던 평민의 권리 주장은, 그들의 군대에 대한 기여가 점점 중요해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로마 군대의 승리는 곧 로마 평민의 권리 신장을 불러왔다.
이런 추세는 2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니발 전쟁이라 불린 이 전쟁에서 로마 정치의 한 축이었던 평민파는 상대적으로 몰락해버렸다. 전쟁 초기 한니발과 맞서 참패를 당했던 대부분의 집정관들이 평민파였다는 점, 그리고 젼쟁 중 평민파의 지지층인 자영농이 전쟁의 여파로 타격을 입었다는 점 등이 결정적인 평민파의 몰락을 불러왔다.
포에니 전쟁 후 로마 세계에는 토지를 잃은 빈민들이 늘어났다. 이 빈민들을 군대로 흡수한 것이 마리우스의 병제 개혁이었다. 개혁의 핵심은 군대 입대 조건이었던 재산 규정을 없앤 것이었다. 당연히 무산자들이 군대로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군대에서 두둑한 몫을 챙겨 제대하는 것이 제일 목표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무산자들의 에너지를 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즉 굶주린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이 필요했다.
마리우스의 개혁 이후 로마 정계는 이제 원로원과 일부 군벌들의 대결 장이 되버렸다. 포에니 전쟁 이후 원로원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옥상옥이 됐다. 이 원로원에 잘보인 몇몇 인물들이 군대를 이끌고 전공을 세운 뒤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만들고, 그 것을 이용해 원로원과 갈등, 또는 협력하며 정계의 실력자가 되는 것이 이후 공화정 말기까지 이어진 일반적인 로마 정치의 패턴이 됐다. 카르타고 정복 이후 로마의 해외정복 사업이 끝없이 이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군벌들의 각축을 국내에서 적절히 소화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참고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1.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임마뉴엘 월러스틴은 원래 아프리카 지역연구 전공이었다. 아프리카 지역 국가와 사회의 변동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월러스틴은 한 국가나 한 사회만을 들여다봐서는 그 변동의 원인 - 과정 - 결과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다다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러스틴은 적절한 분석단위를 좁히거나 확장해야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결론적으로 그는 국가나 사회를 하부단위로 갖는 하나의 세계경제체제를 분석단위로 삼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월러스틴 스스로 페르낭 브로델과 마르크스에 학문적으로 크게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두 사람의 영향은 세계체제론은 사실 사회 전체에 대한 구조기능적인 시각과 역사적 시각과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드러나 있다. 구조기능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체제가 특정한 기능을 하는 하부단위들간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 성립되고 유지된다는 것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은 그 체제가 역사적인 일련의 조건들과 전개과정, 우연 등의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나타나고 사멸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겠다.
2.
세계경제체제는 로마나 중국과 같은 세계제국체제와는 구별되는 분석단위다. 그 것은 세계제국과 같이 매우 광범위한 지리적 영역에 걸쳐 분포해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결정적으로 세계제국들과는 달리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권위체가 부재한다.
세계제국체제에서 주변에서 중심으로의 잉여는 공납의 형태를 띄게 되기 때문에 그 방대한 조공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기구의 유지와 중앙-지방간의 행정 질서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로 대두된다.
이런 세계제국체제와 달리 세계경제체제는 중앙의 권위체가 부재한 가운데 경제적 잉여의 흐름이 주변부에서 중심부 국가들로 흐르도록 보장해 주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중심부의 비교적 강력한 국가기구들의 존재다. 이 국가들은 중심부의 특정 계급-부르주아지-에 대해 경제적 잉여를 보장하는 한편, 체제 내의 통일성과 체제유지 비용 전체를 감당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에서 제국체제의 중앙집권기구들과 대조된다.
3.
이 핵심부 국가들에게 있어 국가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계기와 관련이 있다. 그 시작은 16세기 유럽의 지리적 팽창이다.
하지만 이 역사적 계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3-14세기에 걸친 유럽 봉건사회 체제의 위기와 그에 따른 유럽 사회 전체의 팽창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 한다. 유럽 중세를 특징짓는 중세 봉건사회조직이 이 13-14세기에 경제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특정 유형의 돌파가 필요하게 되는 데 당시의 유럽은 결국 대양으로의 지리적 팽창을 택하게 된다. 그 팽창은 세계경제체제의 필수적인 성립 조건이었지만, 당시의 역사적 조건 하에서는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 가운데 실현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런 조건에서 팽창은 시작되었다. 이 지리적 팽창은 지리적 경계를 가지는 국민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의 원인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지리적 팽창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국가기구의 뒷받침이 있었고, 강력한 국가기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담세 계급인 부르주아지 계급의 경제적 성공이 필수적이었다.
3.
재미있는 지적은 세계경제체제에서 핵심부 국가들 가운데 종종 세계제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국가들이 있지만, 그 시도들은 어김없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에스파냐, 17-18세기의 프랑스, 19세기의 영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국가들 모두 그 시기의 핵심부 국가들이었으나 지나친 지리적 팽창과 그에 따른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되는 운명을 맞는다.
4.
즉 16세기 이후 지리적으로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해온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는 특정한 중앙 권위체의 부재 속에서 몇몇 핵심부 국가들의 강력한 국가기제가 그 중앙 권위체의 몇몇 기능을 대신해 온 것이다. 그 기능은, 그러나 제국의 행정부와 구별된다. 그 것은 특정한 정치적 통일의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이 비용은 단적으로 말해 로마나 중국이 국경의 이민족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치뤄야했던 전쟁 비용의 부담에서 핵심부 국가들이 아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핵심부 국가들의 기능은 사실 경제적 기능에 집중되었다. 실로 근대의 초기 국가들은 정치-경제의 유기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핵심부 국가들의 강한 해군력은 대개 무역로의 확고한 장악을 위해 이용되었다. 때로는 직접적인 약탈과 지리적 정복에도 동원되었다.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비조달은 독점권 부여, 국채발행, 징세청부, 관믹매매와 같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 수단들 모두 특정한 계급에 국부의 흐름을 보장하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16세기 에스파냐와 대은행가 푸거가의 흥망성쇠, 19세기 영국과 로스차일드 가의 흥망성괴가 어느정도 궤를 같이 하는 일종의 운명공동체였다.
5.
월러스틴의 정의에 따르면 세계경제체제는 16세기 근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아래 팽창해온 체제이다. 이 체제는 역사적 자본주의 체제일 뿐이지 초시간적인 것이 아니고, 또한 4백년간 지속되었을 따름이다.
기원전의 지리적 팽창을 끝낸 로마공화국은 기원원년 무렵에 세계제국체제로 전환한 뒤에도 4백년 넘게 지속되었고 중국역시 세계제국체제가 당/송 연대에 확고히 자리잡은 이후로는 1천년 넘게 지속됐다. 연대로만 비교해보면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특별히 성공적인 체제는 아닌 셈이다. 물론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유례없는 내외부적 경제적 팽창을 가능케 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화려한 어조로 찬양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업적은 괜한 과장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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