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6일 화요일

참고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1.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임마뉴엘 월러스틴은 원래 아프리카 지역연구 전공이었다. 아프리카 지역 국가와 사회의 변동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월러스틴은 한 국가나 한 사회만을 들여다봐서는 그 변동의 원인 - 과정 - 결과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다다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러스틴은 적절한 분석단위를 좁히거나 확장해야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결론적으로 그는 국가나 사회를 하부단위로 갖는 하나의 세계경제체제를 분석단위로 삼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월러스틴 스스로 페르낭 브로델과 마르크스에 학문적으로 크게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두 사람의 영향은 세계체제론은 사실 사회 전체에 대한 구조기능적인 시각과 역사적 시각과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드러나 있다. 구조기능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체제가 특정한 기능을 하는 하부단위들간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 성립되고 유지된다는 것이고, 역사적이라는 것은 그 체제가 역사적인 일련의 조건들과 전개과정, 우연 등의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나타나고 사멸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겠다.

2.
세계경제체제는 로마나 중국과 같은 세계제국체제와는 구별되는 분석단위다. 그 것은 세계제국과 같이 매우 광범위한 지리적 영역에 걸쳐 분포해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결정적으로 세계제국들과는 달리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권위체가 부재한다.

세계제국체제에서 주변에서 중심으로의 잉여는 공납의 형태를 띄게 되기 때문에 그 방대한 조공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기구의 유지와 중앙-지방간의 행정 질서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로 대두된다.

이런 세계제국체제와 달리 세계경제체제는 중앙의 권위체가 부재한 가운데 경제적 잉여의 흐름이 주변부에서 중심부 국가들로 흐르도록 보장해 주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중심부의 비교적 강력한 국가기구들의 존재다. 이 국가들은 중심부의 특정 계급-부르주아지-에 대해 경제적 잉여를 보장하는 한편, 체제 내의 통일성과 체제유지 비용 전체를 감당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에서 제국체제의 중앙집권기구들과 대조된다.

3.
이 핵심부 국가들에게 있어 국가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계기와 관련이 있다. 그 시작은 16세기 유럽의 지리적 팽창이다.

하지만 이 역사적 계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3-14세기에 걸친 유럽 봉건사회 체제의 위기와 그에 따른 유럽 사회 전체의 팽창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 한다. 유럽 중세를 특징짓는 중세 봉건사회조직이 이 13-14세기에 경제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특정 유형의 돌파가 필요하게 되는 데 당시의 유럽은 결국 대양으로의 지리적 팽창을 택하게 된다. 그 팽창은 세계경제체제의 필수적인 성립 조건이었지만, 당시의 역사적 조건 하에서는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 가운데 실현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런 조건에서 팽창은 시작되었다. 이 지리적 팽창은 지리적 경계를 가지는 국민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의 원인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지리적 팽창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국가기구의 뒷받침이 있었고, 강력한 국가기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담세 계급인 부르주아지 계급의 경제적 성공이 필수적이었다.

3.
재미있는 지적은 세계경제체제에서 핵심부 국가들 가운데 종종 세계제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국가들이 있지만, 그 시도들은 어김없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16세기의 에스파냐, 17-18세기의 프랑스, 19세기의 영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국가들 모두 그 시기의 핵심부 국가들이었으나 지나친 지리적 팽창과 그에 따른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되는 운명을 맞는다.

4.
즉 16세기 이후 지리적으로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해온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는 특정한 중앙 권위체의 부재 속에서 몇몇 핵심부 국가들의 강력한 국가기제가 그 중앙 권위체의 몇몇 기능을 대신해 온 것이다. 그 기능은, 그러나 제국의 행정부와 구별된다. 그 것은 특정한 정치적 통일의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이 비용은 단적으로 말해 로마나 중국이 국경의 이민족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치뤄야했던 전쟁 비용의 부담에서 핵심부 국가들이 아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핵심부 국가들의 기능은 사실 경제적 기능에 집중되었다. 실로 근대의 초기 국가들은 정치-경제의 유기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핵심부 국가들의 강한 해군력은 대개 무역로의 확고한 장악을 위해 이용되었다. 때로는 직접적인 약탈과 지리적 정복에도 동원되었다.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비조달은 독점권 부여, 국채발행, 징세청부, 관믹매매와 같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 수단들 모두 특정한 계급에 국부의 흐름을 보장하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16세기 에스파냐와 대은행가 푸거가의 흥망성쇠, 19세기 영국과 로스차일드 가의 흥망성괴가 어느정도 궤를 같이 하는 일종의 운명공동체였다.

5.
월러스틴의 정의에 따르면 세계경제체제는 16세기 근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아래 팽창해온 체제이다. 이 체제는 역사적 자본주의 체제일 뿐이지 초시간적인 것이 아니고, 또한 4백년간 지속되었을 따름이다.

기원전의 지리적 팽창을 끝낸 로마공화국은 기원원년 무렵에 세계제국체제로 전환한 뒤에도 4백년 넘게 지속되었고 중국역시 세계제국체제가 당/송 연대에 확고히 자리잡은 이후로는 1천년 넘게 지속됐다. 연대로만 비교해보면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특별히 성공적인 체제는 아닌 셈이다. 물론 근대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유례없는 내외부적 경제적 팽창을 가능케 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화려한 어조로 찬양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업적은 괜한 과장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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