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혁명은 영국 의회의 의원들이 당시 영국의 왕이던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 과 메리 부처를 불러들여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왕위 교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명예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치경제적 결과이다.
윌리엄 3세는 의회가 제출한 권리선언을 받아들여 이것이 권리장전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핵심은 국가의 재정 정책의 주도권이 의회로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권리장전 이후로 영국의 왕들은 의회의 동의 없이 과세할 수 없게 되었고 예산 및 전쟁관련 정책 결정에서도 역시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다. 제임스 2세가 축출된 것은 바로 그런 권리장전의 내용과 상반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의회의 권리선언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권리선언을 하나의 법으로 공포한 명예혁명을 주도한 것은 의회에서도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신흥부르주아지 계급에 속한 의원들이었다. 그들이 윌리엄과 메리 부처를 추대한 것은 일차적으로 메리가 제임스 2세의 아들에 이어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공이 네덜란드의 통치자였다는 것도 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당시 유럽의 최대 상업국가가 바로 네덜란드 공화국이었으며 오렌지 공 월리엄은 일종의 상인들의 대표로서 공화국을 통치했다.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영국의 의원들로서는 확고한 프로테스탄트이자 상인들의 통치자인 월리엄 공에게서 제임스 2세와 같은 위험 요소는 없을 것이라 보았을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17세기 내내 영국과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 상의 치열한 경쟁자였다는 점이다. 두 나라 상인들은 대서양과 인도로의 중계 무역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영국은 16세기 무렵 1차 엔클로저 운동을 통해 이미 양모의 가공 및 수출 산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부상했고,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플랑드르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모직물 공업이 번성했다. 특히 상업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과 인도양 쪽으로 넘어가면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변방의 약소국에서 유럽 최고의 상업 국가로 탈바꿈했다.
양 지역의 상인들은 큰 부를 쌓게 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공화국의 길에 들어섰다. 네덜란드 혁명의 주체는 각 도시의 실질적인 실력자들인 상인 계급이었다. 표면상 명예혁명과 네덜란드 혁명 둘 모두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 갈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상인 계급과 전통적인 지배계급 간의 갈등이 깔려 있었다. 상인 계급에게 있어 군주의 절대적 지배는 무거운 과세와 상업 활동의 규제를 뜻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상업 부르주아 계급 모두 혁명의 결과로서 실질적으로 국가의 재정 기구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는 상업 뿐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유럽 최고 수준에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종교 개혁으로 인해 카톨릭 신학의 전통적인 규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자연 탐구 활동이 권장되고 있었다는 점이 과학발달은 촉진했다. 두 나라는 17세기 유수의 자연과학자들을 배출했다. 어떤 점에서 17세기는 뉴턴의 세기였다. 그는 중세적 우주관을 완전히 탈피해 근대적 자연관을 완성해냈다. 그의 연구 업적은 그가 속한 왕립학회를 통해 공유되었다. 네덜란드의 호이겐스는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이면서 뉴턴과 서신교환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유럽 과학계는 그런 서신교환을 통해 하나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로크 역시 그 네트워크의 일원이었다. 그는 뉴턴과 가깝게 지냈으며 그 자신도 로버트 보일의 기체 역학 실험을 돕기도 하는 등 과학자로서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그 당시 왕립학회 회원들은 자연과학의 탐구에 있어 경험주의적 방법에 경도되어 있었다. 경험주의자들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방법론, 즉 가설에 의한 추론을 배척하고 실험에 의한 경험적 자료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법칙을 도출하고자 했다. 뉴턴은 이런 경험주의적 방법을 통해 그의 만유인력 법칙을 도출해냈다. 그는 우주의 모든 물체들의 운동 원리를 단 3가지 수학법칙으로 간결하게 포현해냈다. 뉴턴의 우주는 수학으로 표현된 기계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였다. 로크는 그런 기계적 우주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통치론>에서 로크는 하나의 가설적인 상태인 자연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자연 상태는 그 자체로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인간들이 그저 모여 있는 상태이다. 이들의 행위는 자연 상태에 내재한 하나의 법칙, 자연법에 의해 규율된다. 이 자연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관철되는 법칙이며 오직 이성에 의해 발견되고 준수되는 법칙이다. 로크는 그 자연법을 노동에 의한 재산의 획득과 그에 대한 권리주장이라 봄으로써 재산권의 획득과 보호를 하나의 보편적 법칙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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