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6일 토요일

참고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정리


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주가 어떻게 집권하며 어떠게 그 국가를 유지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군주론>이 그 같은 권력 투쟁에서 군주 개인이 승리하는 방법을 담은 처세서/지침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2.
<군주론>은 군주의 이익과 인민의 이익이 대개 일치한다는 대전제 아래 논의가 전개된다. 그 이익은 한마디로 말해 생존이다. 국가의 안보야 말로 군주가 인민을 대표해 추구하는 목적이며 그 수단은 곧 가차없는 행동력 - 국가 이성이다.

3.
마키아벨리가 생존을 국가 전체의 목적이라 본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이탈리아 정세를 반영한 것이다. 르네상스 말기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이탈리아는 용병대장과 은행가의 시대였다. 이 양자는 모두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였으며 그 수단은 군대와 돈이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4차 십자군 전쟁이 바로 그런 시대를 잘 보여주는 예다. 베네치아는 성스러운 전쟁을 식민지 건설과 돈벌이를 위한 거대한 비즈니스로 바꿔놓았다. 그 비즈니스에 도덕과 종교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4.  
군주와 인민의 이익이 공통의 것 - 생존이라는 가정은 사실 터무니 없는 것이다. 근대 정치는 군주/국가와 인민 간의 이익이 대립한다는 전제 아래 논의를 전개했다. 정치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곧 양자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이 같은 방식의 군주와 인민의 대립은 생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5.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군주는 권력을 추구(해야)하는 존재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며 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독특한 결론이다. 그가 말하는 군주의 덕(virtu, 비르투)은 고대나 현대적 의미의 덕이 아니다. 그 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능력, 도덕에 구애됨 없이 냉철하게 손익을 계산해 수단을 활용하는 역량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비르투가 가득한 인간이야 말로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으로 본 군주다.

6.
마키아벨리의 업적은, 무엇보다 정치를 종교에서 분리해낸 것이다. 그는 정치에서 도덕과 가치의 문제를 배제하고 오직 정치를 권력 추구의 문제로 한정시켜 논의했다. 그 것은 정치를 학문으로 만들려는, 즉 과학적으로 정치 문제에 접근하려는 태도였다. 이 것은 마키아벨리 특유의 정치적 현실주의로 귀결되었다.

7.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선험적인 일반적 공리 몇 가지를 도출해낸다. 그 것은 과거의 사례와 당대의 현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은 공리들이다. 그 공리들은 대개 인간은 악하며 이익 추구를 하는 존재다,라던가 군주는 도덕에 구애됨 없이 손익을 계산해야 한다, 인민의 호의를 사는 것이 권력 추구에 도움된다는 따위의 것들이다.

8.
마키아벨리는 엄격한 의미에서 합리주의적, 또는 경험주의적 방법을 채택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가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을 진실로 믿었다는 점에서 그는 경험주의적 방법을 취했고, 그의 논의를 일반적 공리 위에서 구축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 방법을 취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정치를 근대의 과학적 원리 위에 놓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과학으로서의 정치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다뤄야 했다.  

9.
가차없는 생존투쟁으로 가득찬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세계관은 다른 무엇보다 국제정치의 현실에 가장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는 로크의 <통치론>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관점이다.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생존은 무엇보다 최우선의 목표가 된다. 국가의 무력 사용은 그 안보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정당화된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10.
마키아벨리는 냉철하게 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살아남는 것이 최선의 목표인 세계에서 도덕을 논하는 것은 파멸의 지름길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는 법이다. 이런 세계관은 홉스와 로크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홉스는 그 생존 투쟁을 개인간의 관계에 적용한 뒤, 오직 그 폭력을 지고의 폭력을 가진 괴물 리바이어던만이 끝낼 수 있다고 선언한다.

11.
현대의 기준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의 시대에 국가간의 전쟁은 아직 낭만적인 수준이었다. 그것은 제한전이며 상대의 절멸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의 전쟁은 총력전이며 상대의 절멸만이 목적이 되었다. 이 것은 마키아벨리의 논의에 따르면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나, 또한 파국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기도 했다.

12.
근대철학자들은, 상스럽게 말하자면, 삽질하지 않는 개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마키아벨리는 그 삽질하지 않는 개인을 도덕에 구애되지 않고 가차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이성에서 찾으려 했다. 헤겔은 그 논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 시민사회의 이기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영역으로서 국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삽질하지 않는 국가는 서로에게 총질을 해댔고, 이로써 근대의 세계는 두 차례, 파국 직전까지 갔다.

13.
마키아벨리가 열어젖힌 근대의 정치 세계는 플라톤의 덕의 공화국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위는 현실에 압도되었고, 그 자체로 선한 지혜를 추구하는 이성은 그저 계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 자신의 정치적 현실주의가 열어젖힌 세계를 보고 마키아벨리가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군주론>을 고쳐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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