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6일 토요일

참고글: 존 로크의 '통치론' 정리

1.
로크의 <통치론>은 지금 읽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열심히 늘어놓아서 당황하게 된다. 그건 로크가 실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사고에 로크의 주장이 은연 중에 깔려있다는 방증이다. 내 생각에, 현실의 사고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근대 정치철학의 최종 승자는 로크다.

2.
로크의 주장을 낮게 보는 이들은 <통치론> 자신의 스폰서가 정권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적어놓은 책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이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그보다 로크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은, 역사적 과정의 전개에서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지를 탁월하게 포착하고 그들의 정치적 승리를 위한 이론적 기초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내놓았다는 데 있다.

로크는 상업 자본주의가 만개하던 시대의 영국에서 살았다. 그가 살았던 17 세기 당시 영국의 전통적인 지배계층은 토지귀족이었으며 상업으로 축재를 하기 시작하던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 입지를 넓혀가던 시점이었다. 로크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었던 명예혁명은 전통적인 토지귀족 계급과 상업으로 축재를 한 부르주아 계급 간의 최초의 격돌이었다. 로크의 직업은 의사였는데, 당시의 의사는 지금으로 치면 정신과 전문의쯤의 역할을 했다. 그의 주된 고객들이 대개 부르주아 계급이였던 탓에 그들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로크를 후원했던 세력, 더 정확히는 그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샤프츠베리 백작은 당대의 정치투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주된 조언자이자 보좌역이었던 로크의 명성 역시 덩달아 유명해졌다. <통치론>이 오늘같은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 로크 자신이 당대에 정치적 승리자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치론>이 오늘날 정치적 사고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통치론>에 담긴 주장이 부르주아 계급의 구미에 딱 들어맞은 덕분이다. 로크는 어찌보면, 당대의 역사적 흐름을 꿰뚫어보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직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3.
<통치론>의 핵심적인 주장은 크게 자연법이론, 사회계약론, 저항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논의를 하나로 잇는 큰 줄기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의 재산권은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며 정부의 목적은 바로 그 재산권의 보호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별로 길지도 않은 <통치론>에서 잊을만하면 반복된다.

로크는 재산권을 폭 넓게 정의한다. 개인의 부 뿐만이 아니라 생명과 신체의 자유같은 것도 포괄할 수 있는, 인신의 권리 모두가 재산으로 정의될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투여한 모든 것은 그의 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이다. 재산권은 오직 타인의 필요를 침해하는 것에 의해서만  한계지워질 뿐이다.

로크의 주장은 재산권의 정의를 교묘하게 넓히면서 그것을 자연권이라 정의하는데서 그 탁월함이 있다. 그는 재산권을 천부적인 권리로 격상시킴으로써, 다른 모든 것의 상위에 두고 그 것을 보호하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라 논증하면서 통치의 원리를 이끌어 낸다.

사회계약론은 별 거 없다. 사람들은 자연상태에서 그들의 천부적인 재산권을 누리며 자유롭게 산다. 하지만 자연상태에서는 타인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오직 자연상태의 자유인들은 오로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국가의 통치 아래 자발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만들어진 정부는 시민 개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 되고 그 노릇을 잘 못하는 정부는 전복되어 마땅하다. 이 것이 로크의 <통치론>이 말하는 핵심이다.

4.
로크의 정치철학은 플라톤의 그 것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 것은 고대와 근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그 찬반여부나 가능성여부와는 무관하게 여하튼 "덕의 공화국"이다. 그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은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불어살아감으로써 완성되는 존재이며, 그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올바름'에 기초해야 한다. 플라톤은 사람이 무엇보다 선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였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 영혼을 더 높은 것으로 갈고닦아 인간으로써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로크는 근대의 사람이었다. 근대는 공동체와 분리된, 공동체에 앞서는 개인이 나타난 시대였다. 데카르트는 내가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라 보았고 뉴턴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기계적인 법칙이며, 그것은 규명될 수 있는 힘이었다. 근대는 '내'가 가장 우선되는 사회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가 일차적으로 고려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증명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어야 했다.

플라톤은 국가를 모든 이들의 영혼을 위한 올바른 기초에 놓길 원했지만 로크는 국가를 재산의 보호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보았다. 그는 물질의 운동이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이라는 당시의 세계관을 철저하게 믿었다. 비록 뉴턴의 '힘'은 비물질적인 힘이었지만, 그 것은 규명되지 않았다.(뉴턴 자신은 힘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힘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는 것, "그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물질은 그가 가진 재산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비물질적인 것들은 경험될 수 없고 증명될 수 없으니 배제되었다. 그저 신이라고 말하며 눙치듯 넘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플라톤의 <국가>가 올바른 삶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그 내용을 따져물었다면, 로크의 <통치론>은 그저 국가가 기초해야 하는 가치의 형식 만을 중요시했다. 그 삶은 그저 내가 가진 재산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영혼이라 말한다면, <통치론>은 그저 재산을 가진 사람만이 인간이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머지야, 로크에게는 내 알 바 아니었던 듯 싶다.

그렇게 로크는 정치적인 것의 범위를 극적으로 좁혔다. 경험 가능하며 뚜렷하게 증명될 수 있는 것 만을 중요시했던 로크에게 있어 이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5.
로크는 <통치론>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국가는 이제 선을 위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재산의 보호를 위한 도구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그 것은 그 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인민이 자유로부터 철학자왕이라는 권위로의 도피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로크의 국가는 오로지 그 인민의 재산을 보호할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개인에게 맡겨두었다. 그가 어떻게 살건 간에, 불행하던 행복하던, 성공하던 망하던, 배가 터져죽던 굶어죽던, 그건 개인의 삶이지 공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로운 개인이었다. 적어도 가능성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로크의 공화국의 시민은 플라톤의 공화국의 신민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것이 비록 굶어죽은 자유라 하더라도.

6.
오늘날의 자유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국가의 목적을 논한다면 그들이 국가가 가진 목적과 한계는 뚜렷하다. 그 국가는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국가다. 그게 안되는 국가는 전복되어야 마땅하다. 공권력을 이용해 인민의 생명을 앗고 재산을 강탈해 그들의 배를 불리려는 자들은 그저 날강도떼에 불과하지, 자유주의자라 불러서는 안 된다.

로크가 오늘날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아마 용산 참사를 애도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은 아마 로크를 때려잡을 것이고. 아니, 영어로 방송할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은 비키라고. 17세기 영어 악센트로 발음하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하겠다.

댓글 1개:

  1. 쉽게 써놓으신 설명 잘 봤습니다~~ 덕분에 역사프로젝트가 수월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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