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대항해시대]는 15-18세기 근대 세계의 해양팽창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 몇 가지.
1.
15-18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럽이 해상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거쳐 유럽의 우위와 확고해지기 전까지 사실 유럽이 동아시아나 인도에 비해 확고하게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 해양팽창은 일방적인 침탈의 역사라기 보다는 서양의 팽창에 이은 다른 지역의 적극적인 대응과 전환의 역사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럽의 팽창은 18세기까지 확고한 우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은 대개 중요한 지점에 거점을 설치하고 그 거점들을 잇는 무역 루트를 개발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팽창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개인들은 각 거점에 활동하던 이른바 "상업 디아스포라"들이다. 점과 선으로 이어져 있던 이 디아스포라들의 집합이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
이 디아스포라들은 서로 흩어져있었으나 또한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기도 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좋은 사례이다. 이들의 무역은 국가의 철저한 무력과 금융 양편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그러나 유럽이 내륙으로 파고들어가고 확고하게 식민지를 구축한 것은 사실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시기가 되서야 비로소 유럽국가 기구들이 완전히 근대적인 형태를 띄고 다른 지역을 압도한 덕분일 것이다.
2.
근대 세계의 해양팽창을 특징짓는 것 중 하나는 폭력의 세계화다. 이런 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유럽식 군대와 전쟁의 확산이다. 최초에 유럽인과 접했던 문명, 특히 동남아시아 해상권이나 신대륙의 선주민들은 유럽식의 전쟁 관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의 전쟁은 오늘날의 스포츠와 비슷하게 치러졌다. 사상자는 거의 없었으며 복잡한 관례와 의식으로 통제되었다. 전쟁은 대개 지배 확장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런 관습과 전통 아래 살던 이들에게 유럽인들의 폭력적인 전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항해 시대 초기 선주민들이 유럽인들에게 그토록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은 이런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 컸다. 그러나 초기의 접촉에 의한 충격이 지난 뒤 선주민들 역시 유럽의 전쟁 방식을 곧 받아들였다. 말과 총을 받아들여 멸망 직전까지 끈질기게 저항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이 좋은 예이다.
3.
대항해 시대 해상생활과 선원들의 실상을 다룬 파트가 특히 좋았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했던 선원들의 문화가 근대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선취했다는 것, 당시의 무역이 일종의 벤처 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등은 재미있고 의미있는 지적이다.
4.
이 책의 3부는 근대 해양팽창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기 대항해시대는 폭력의 세계화 과정이었다. 이 폭력은 대개 비유럽 지역의 전통적인 사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몇백년동안 자신들의 관습과 문화를 발전시켜오며 살아오던 수많은 부족들이 유럽과의 접촉으로 멸망했다. 노예로 팔리거나 플랜테이션 노동자가 되거나 하는 편은 차라리 살아있기라도 한 편이었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새로운 병원균들-천연두, 매독 등-은 소리없이, 빠르게 유럽과 접촉한 사회를 절멸상태로 몰아갔다.
말과 소, 양같은 유럽의 동물 뿐 아니라 작물들까지 세계화의 흐름에 편입되었다. 남미와 호주,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삼림이 파괴되고 목초지가 되었다. 멕시코의 광대한 초원은 지나친 목양사업으로 인해 사막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것들 자체가 거대한 폭력이었다. 대항해시대 이전에 확고한 문명권을 이루었던 아시아 사회를 제외한 다른 문명들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파괴되거나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아시아 역시 곧 그렇게 될 운명이었지만.
물론, 다른 사회의 사람들이 그저 폭력의 희생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그 충격에 저항해 나름의 흐름을 만들었다. 여러 플랜테이션의 노예들은 끝내 자유를 쟁취했다. 중국과 일본은 저항했다. 기독교의 전파는 현지의 문화와 융화될 수 밖에 없었다. 아메리카에서 전해진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는 많은 이들을 기아의 위험에서 구해냈고, 19세기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일조하기도 했다. 유럽의 폭력에 맞서 신세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사회를 조용히 건설해나갔다. 이 조용한 흐름들이 19세기 민족주의의 발흥과 만나, 독립의 물결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5.
유럽의 근대는 폭력의 동력들이 차근차근 축적되온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대항해시대의 팽창이 폭력적인 방식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 내부의 국가와 자본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발전했다.
윌리엄 랭어는 1914년의 세계 1차대전을 가리켜 그토록 끔찍하고 잔인하며 무익했던 전쟁이 실제로는 별다른 이유없이 지속되었다는 것이야말로 미스터리이자 비극이라 말한 적 있다. 어쩌면 근대 내내계속 축적되어온 폭력들이 한꺼번에 그렇게 터져나온 것은 아닐런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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